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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빈손’ 윤-이 회담…앞으론 어찌 되나 [4월30일 뉴스뷰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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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신문 4월30일치 1면 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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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8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4.30) 아침신문의 1면 톱은 모두 ‘윤석열-이재명 회담’(6곳)입니다. 또 △34년만의 최저치, 엔저(5곳)도 주요한 뉴스로 1면에 배치됐습니다.



① 차이의 발견 : 윤-이 회담
② 시선, 클릭!
- 34년만의 최저치, 엔저
- 임금 줄고, 부업 늘어
- 가뭄·폭우·폭염·한파, 이상기후
- 5월 어린이 축제, 한강 어른 축제
- 심근경색 늘어난다
③ Now and Then : 인터내셔널가(1888)







① 차이의 발견





# ‘빈손’으로 끝난 윤-이 회담



1. 예상 한 치도 안 벗어나
- 별로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인상적 장면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1) 이재명, 20분 사전발언
- 회담장에 들어가기 직전, 이재명 대표가 돌아서는 기자들을 불러세워 미리 준비한 A4 10장 분량 원고를 읽어내려갔습니다. △민생회복지원금 수용 △의정갈등 조속 해결 △과도한 거부권 행사 유감 표명 및 자제 △이태원참사 특별법‧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특검법 수용 등 10가지 민생 요구사항을 빠짐없이 언급했습니다. 김건희 여사 의혹에 대해서도 “(국정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건희’ 또는 ‘여사’ 대신 ‘가족’이라고 언급한 것은 최소한의 예의 차원이라고 여겨집니다.



- 회담도 하기 전에, 예고없이 이렇게 장황한 언급을 일방적으로 하는 건 회담 상대방에게는 상당한 실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 대표가 애초 이 회담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하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어차피 윤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없을 것이고, 윤 대통령은 ‘만남’ 자체가 목적이니, 거기에 들러리 서는 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예 공개석상에서, 직접, 영상으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기록해 놓겠다는 뜻이었습니다.



2) 이재명 15분, 윤석열 85분
- 애초 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윤 대통령이 “듣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 대표가 공세적으로 나와 말을 쏟아내고, 윤 대통령은 그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모습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가 의제를 꺼내 요구하면, 윤 대통령이 답변을 길게 이어나갔습니다. 대부분 ‘왜 거절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식이었습니다. 배석한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이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지, 일일이 답변 시간을 재어 이를 공개했습니다. “언론 압수수색, R&D 예산, 연금 개혁과 의료 개혁, 이태원 특별법, 여야정 민생협의체 이야기가 주로 있었고, 나머지 주제는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진성준 정책위의장)고 합니다.



3) 이재명 요구, 윤석열 거절 무한반복
① 민생회복지원금(25만원) -> “물가·금리 고려할 때, 어려운 분들 효과적 지원이 바람직. 정부 추진하는 소상공인 지원과 서민금융 확대가 먼저”
② R&D 예산 추경으로 올해부터 -> “내년 예산에 증액 반영, 추경 통한 예산 복원·증액 생각 없다”
③ 연금개혁, 정부가 국회 공론화특위에 방향 제시해야 -> “충분하고 많은 자료를 (국회에 이미) 줬다”
④ 이태원 특별법 수용 -> “민간조사위가 영장청구권 갖는 건 법리적으로 문제있어 이를 해소해야”
⑤ ‘윤석열 검증보도’ 언론사 압수수색 중단해야 -> “보고받은 바 없다. 조작일 경우는 국가업무 방해”
- 의대 증원 문제에 있어서만, 원론적 수준의 공감대 형성
- 기타 채 상병, 김건희 여사, 미·일 편중외교 등은 ‘윤 대통령 답변이 너무 길어 논의할 시간이 없어’
- 장면을 정리하고 보니, 마치 서브를 넣으면 받아치는 탁구나 배구 경기를 보는 듯합니다.



2. 반응
1) 대통령실
- “3가지에 합의했다. △의대 정원 확대 △앞으로 종종 만나기로 △민생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도운 홍보수석)
- “야당과의 소통에 첫 걸음을 내디딘 것”



2) 민주당
-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해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 국정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박성준 대변인)



3) 조국혁신당
-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왜 만났냐. 사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려고 만났냐. 시험에서 백지 답안 낸 꼴”(조국 대표)



3. 향후 전망
1) 다시 만남 의문
- 말로는 서로 “다시 만나자”고 했으나, 그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런 식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재명 대표 입장에선, 이처럼 서로 각자 말만 하고 헤어지는 만남을 반복하는 것은 더 큰 부담이 됩니다.



2) 여야정 협의체 구성 의문
- 대통령실의 제안입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국회를 활용하자”고 했습니다. 여야정 협의체는 대통령실이 주도하고, 야당이 협조를 하는 형태가 됩니다. 이런 구조에서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려면, 먼저 대통령실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내보여야 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야당이 여야정 협의체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 “국회를 활용하자”는 이야기는, 국회는 여소야대 국면으로 야당이 우위입니다. 또한 국회가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공식기구입니다. 가장 좋기로는 국회에서도 논의하고, 여야정 협의체에서도 논의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윤 대통령의 입장 변화가 먼저 따라야 합니다.



3) 특검 통과는 진행
- 21대 국회에서 관철하지 못한 각종 특검법은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재연될 것으로 보입니다.



- 다만, 현재 108석인 국민의힘 의석 구조상, 8석의 이탈을 막아내야 하는 것이 여권의 과제입니다. 여론이 좋지 않음에도 ‘친윤’ 이철규 원내대표를 밀어부치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채 상병 특검’의 경우, 일부 국민의힘 의원 또는 당선자들이 공개적으로 ‘특검법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해 ‘표 단속’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입니다.



4) 30% 대통령이 목표?
-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초반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최소한의 국정운영을 유지하려면, 30%대는 되어야 합니다. 총선 이후 추락한 TK 및 보수층 지지율을 먼저 끌어올리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30%를 목적으로 하느냐, 40%를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국정의 방향은 전혀 달라집니다. 40%를 지향하면 중도 확장 전략을 써야 하지만, 30%를 목적으로 하려면 보수 지지층만 결집하면 됩니다. 남은 임기 3년 내내 40% 포기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는 임기내 재보궐 선거, 2026년 지방선거까지도 포기하고, ‘거야’ 민주당 헛발질 노려 2027년 대선 역전극을 노리는 전략입니다. 마치 약팀이 하프라인 아래 자기 진영에만 머무는 ‘전원 수비’ 전략을 세우다, 상대방이 허점을 보이면 기습공격을 노리는 전략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3년 내내 불행해지는 전략입니다.



- 이는 국정운영이 아니라, ‘대통령 자리 건사’하는 게 목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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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론 보도
- 각 신문의 1면과 사설 제목을 보겠습니다.



1) 1면 제목
한겨레 = 720일만의 첫 회담, 빈손으로 끝났다
경향 = 720일 만의 영수회담, 성과없이 끝났다
한국 = 尹·李, 소통 첫발 뗐지만 합의는 없었다
동아 = 尹-李 첫 회담 ‘평행선’… 의대 증원엔 공감
중앙 = 윤·이 ‘의대증원’ 빼곤 평행선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한 130분
조선 = 尹·李 “의료개혁 시급, 의대 증원은 불가피



-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빈손’, ‘성과없이’ 등 이번 회담에 대한 실망감을 강하게 나타냈습니다. 한국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유일하게 의견 일치를 보인 ‘의대 증원’을 강조하면서도 회담이 ‘평행선’만 달렸다는 것으로 이번 회담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1면 제목만 보면,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전혀 이견없이 똑같은 목소리를 내 회담이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2) 사설 제목
한겨레 = ‘변화’ 안 보인 윤 대통령, 총선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경향 = 성과 없이 끝난 윤·이 회담, 국정기조 전환은 없었다
한국 = 서로 할 말만 한 尹-李… 협치 불씨는 살려라
동아 = 720일 만의 尹-李 차담회, 어렵게 말문 텄지만 갈 길 멀어
중앙 = “종종 만나자” 첫발 뗀 영수회담,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
조선 = 尹·李 의대 증원 연금 개혁 협력하기로, 정치 복원 희망 줬다



- 1면 제목 톤과 비슷합니다. 한겨레와 경향은 ‘달라진 게 없다’며 윤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톤입니다. 한국일보는 ‘서로 할 말만 한’이라고 다소 중도적 비판톤을 유지하면서도 한 가닥 주문을 하는 형태입니다. 동아일보도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첫발’에 의미를 뒀습니다. 이처럼 톤에 따라 각 언론사 사설 제목을 배치하면 스펙트럼처럼 조금씩 바뀌는 게 엿보입니다. 그러다 조선일보까지 가면, ‘연금 개혁 협력’, ‘정치 복원 희망’이라는 제목에까지 이릅니다. 마치 ‘라쇼몽’처럼 상황은 같은데, 전달자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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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럼에도
- 비록 이번 회동이 ‘빈손’으로 끝났지만, 그리고 앞으로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봤자 별 ‘성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이 대표가 계속 만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안에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이 중요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비록 ‘사진찍기’일망정, 싸울 때 싸우더라도 같이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국민들 앞에 내보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소한 갈등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인 2016년 대법관 인준을 앞두고 의회 법사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모두 퇴짜 맞았고, 대통령 전화를 받은 공화당 의원 중에 인준 통과로 의사를 돌이킨 사람은 1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런 노력을 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야당 대표도 다 사람입니다. 자주 만나고, 대화하고 그러면 서로 의견을 좁히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일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대통령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기록적 참패를 당하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게 기이합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정말 ‘위기’입니다.



- 이 대표 입장에서도, 비록 아무런 소득없는 만남이었다고는 하나,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망외소득이 전혀 없진 않을 것입니다. 답답하더라도, 정치적 이득이 크게 보이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계속 만나는 기회를 만들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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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시선, 클릭!





# 34년만의 최저치, 엔저



- 이는 엔-달러 환율이고, 우리한테 중요한 건 원-엔 환율입니다. 30일 아침 원-엔 환율은 879.52원입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1엔당 1000원으로 계산하곤 했습니다. 일본 여행을 가시는 분들은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듯합니다. 대신 도쿄, 오사카 도심에 한국인들이 더 많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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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 줄고, 부업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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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Now and Then







내일(5월1일)은 노동절입니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법정 휴가를 갖습니다. 노동절, ‘메이데이’(May Day)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제적인 날인 동시에, 피의 역사가 서린 날이기도 합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적은 보수 등 노동착취가 만연했습니다. 이에 노동자의 권익을 찾는 목소리가 시작됐고, 이는 국제사회주의와 결합해 ‘노동자 연대’ 기치를 높였습니다. 1866년 제1차 인터내셔널 강령에서 8시간 노동제 법제화 요구, 이어 1884년 5월1일 미국 방직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단행한 것이 노동절의 유래입니다. 1889년 7월 제2차 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노동절이 5월1일로 결정돼, 1890년에 첫 노동절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니 올해가 134주년 노동절인 셈입니다. 외국 노동자 선배들의 헌신과 투쟁으로 지금 직장 다니는 우리들이 5월1일을 휴일로 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절은 1958년부터 한국노총 결성일인 3월10일로 정해 기념해 왔는데,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1963년 이를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선 ‘노동’이란 단어는 불순한 용어처럼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란 말에 내포된 계급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부터 5월1일로 날짜를 옮겼으나, 여전히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을 정부 공식명칭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노동절에는 세계 각국에서 ‘인터내셔널가’(1888)를 부릅니다. 인터내셔널가의 시작은 1871년 파리꼬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71년 보불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정부는 프로이센 군대에 항복하고 파리를 비워둔 채 베르사이유로 도망갑니다. 그러자 노동자로 구성된 ‘프랑스 민족방위대’가 독자적인 기구를 구성한 뒤 파리를 접수해 3월18일부터 5월28일까지 세계 최초의 노동자 계급 정부를 세웠습니다.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직책을 노동자계급이 직접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정부였습니다. ‘해방구’, ‘공동체’(커뮤니티) 등이 모두 이 파리코뮌에서부터 비롯된 용어입니다. 그러나 베르사이유로 피신했던 프랑스 정부가 다른 나라 군대의 힘을 빌어 꼬뮌정부를 공격했습니다. 파리 동부로 밀려난 코뮌 전사들은 공동묘지인 페르라세즈에서 마지막 결사항전을 벌이나 결국 생포당합니다. 그리고 동남쪽 벽 앞에서 147명이 모두 총살 당합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파리꼬뮌을 구성했던 3만명을 피살하는데, 베르사이유 군법회의에서 80명의 어린이와 132명의 부인들에게 총살형을 선고하기도 합니다.



‘인터내셔널가’는 꼬뮌 의원이었던 철도노동자 유진 포띠에르가 1871년 ‘지금은 우리가 패배하지만,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언젠가 인터내셔널 깃발이 다시 펄럭이길’ 바라며 지은 시에 1888년 가구세공인이었던 피에르 드게테르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이후 이 인터내셔널가는 노동자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권들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아이러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정부 공식행사에서는 마치 친정부 건전가요처럼, 반대로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거리에서 저항가로 각각 이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천안문 시위 당시에도 학생들이 광장에서 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도 민주화 혁명 이후, 사형 집행 전에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위 영상은 민중가수인 최도은씨가 부르는 인터내셔널가입니다.



오래 전, 1997년에 파리 출장길에 인터내셔널가의 시초인 파리코뮌 마지막 장소인 이 ‘페르 라세즈’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홍세화가 쓴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이 페르 라세즈를 소개한 내용을 보고, 무작정 찾아 나섰습니다. 혹 언젠가 파리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한 번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때 쓴 기사입니다.





[진보의 안식처 ‘페르 라셰즈’]



파리 동쪽 20구에 위치한 페르 라셰즈는 60만 영혼이 잠든 파리 최대의 공동묘지다. 파리에는 이곳 외에도 사르트르, 보들레르, 모파상 등이 누 워 있는 남쪽 몽파르나스묘지, 에밀 졸라, 베를리오즈, 하이네 등이 쉬고 있는 북쪽 몽마르트르 묘지 등이 있지만 페르 라셰즈는 이들과 다른 무엇이 있다.



알퐁스 도데에서 짐 모리슨까지 잠들어



이른 아침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좁은 옆문으로 들어서니 번잡한 담장 바깥과는 달리 ‘죽음’ 저편 세계로 들어온 듯 고즈넉한 평안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덕 위로 ‘돌 이불’이 덮인 묘지와 십자가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안내실에서 유명인사들의 무덤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받아보니 작가 알퐁스 도데, 프루스트, 발자크, 몰리에르, 빅토르 위고, 오스카 와일드, 음악가 비제, 쇼팽, 로시니, 화가 모딜리아니, 들라크루아,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 등 눈에 익은 이름이 여럿이다. 하나같이 열정적인 삶을 산 이들이다. 파리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짐 모리슨(60년대 인기 록그룹 ‘도어스’의 리더)도 그들과 함께 했다.



페르 라셰즈가 ‘진보’의 상징처럼 떠오른 것은 바로 이곳에 ‘코뮌 전사들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1871년 1월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 정부는 프로이센 군대에 항복하고 베르사유로 도망쳤다. 그러자 노동자가 압도적이었던 ‘프랑스 민족방위대’는 파리에 독자적인 지도기구를 구성 한 뒤 3월28일 파리를 접수해 ‘해방구’로 만들었다. 인류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다. 선거를 통해 코뮌위원회가 구성됐고 ‘대중의 이해에 따른 통치’가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됐다.



그러나 역사의 실험은 두달을 넘기지 못했다. 4월17일 정부군의 공격이 시작돼 코뮌주의자들은 파리의 가장 동쪽 끝인 페르 라셰즈까지 밀렸다. 무덤 돌비석을 방패삼아 마지막 결사항전을 벌였지만 실탄이 떨어져 모두 붙잡히고 말았다. 생포당한 147명은 동남쪽 벽 앞에서 전원 총살당했고 주검은 벽 밑에 판 구덩이에 묻혔다. 5월28일이었다. ‘역사적 대희망’이었다고들 하는 ‘파리 코뮌’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코뮈나르(코뮌 참가자)들은 두달 동안의 해방기간 중 극심한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낮에는 토론으로, 밤에는 축제로 보냈다. 코뮌 붕괴 이후 파리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감행돼 3만명이 피살되고, 4만명이 징역형을 받고, 7500명이 알제리 사막에 버려졌다.



인간·혁명에 대한 열정 새긴 ‘전사의 벽’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며 ‘벽’을 찾아가는 길엔 아침안개가 자욱했다. 옛날에는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벽 위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 몇 번을 묻고, 한참을 헤맨 뒤에야 ‘벽’ 앞에 닿을 수 있었다.



“코뮌의 죽은 이들에게”라고 써 있는 초라한 비석이 벽에 붙어 있고, 그 아래 시든 장미꽃 몇 송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벽 바로 앞엔 코뮌 부대를 지휘했다는 폴란드인 장군 야로슬라브 다프로프스키의 묘가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회한이 쇠망한 제국의 잔해처럼 다가왔다.



그들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까 하여 비석을 손끝으로 더듬을 때 프랑스 학생 3명이 벽을 찾았다. 파리10대학 언어학과 1학년 세고린 리게(19·여)와 남동생들이었다. 진지한 표정의 리게는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코뮌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정신을 나타내준다”고 그 의의를 평가했다. 또 “코뮌은 탄생 때부터 비극적 결말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파리코뮌은 짧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과 혁명정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벽 앞에서 ‘이들의 꿈과 신념, 고뇌는 무엇이었으며,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이 이곳에서 흘린 100년 전 핏빛이 선연히 떠올랐다.



파리=글·사진 권태호 기자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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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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