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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MT시평]현상유지에 골몰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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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많은 이가 답답해한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한다. 막연한 불안감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의 '한국의 경제성장 기적은 끝났는가?'라는 기사로 더 구체화했다. 객관적인 지표로 살펴보면 크게 우려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뭔가 삐걱거린다는 느낌이 광범위하게 형성된다.

불안감과 우려의 가장 큰 원인은 대외변화에 따른 것이다. 2018년 미중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강대국의 갈등은 공급망 이전을 거쳐 첨단 제조업의 자국 유치로 계속 변화한다. 1991년 냉전종식 후 형성된 세계화의 질서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국가의 노골적인 영향력 발휘가 이어지는데 과연 이것이 단기에 그칠 것인지, 과거와 같은 국가주도 산업정책의 보편화로 나아갈 것인지 모호하다. 뚜렷한 방향성과 신질서 형성이가시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질서의 붕괴가 가속화하는 환경은 빠른 적응력을 자랑하는 한국 기업에도 벅찬 도전이 되고 있다. 어제까지는 타당하던 경영과 투자결정이 오늘은 잘못됐다고 비난받는 일이 잦아지면서 책임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며 결정보다 미루기가 일반화했다. 경제와 산업을 이끌어나가던 기업들이 방향성을 상실하고 움츠러든 것 같은 느낌은 사회 전반적으로 소극적 성향을 확대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관성적인 정책추진에 따른 정책효과 감소를 들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집중 등이 가속화하면서 사회가 급변하지만 정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기마다 전 정권에서 이뤄진 결정과 판단에 대한 감사와 수사가 이어지면서 모두가 위를 쳐다보면서 판단을 구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대가 됐지만 정작 의사결정의 주체는 소수에게 집중됨에 따라 선제적 판단과 조치는 불가능한 것이 됐다. 수 십년 동안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정책의 구조조정과 방향전환이 필요하지만 누구도 그런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현실이 아닌 당위가 우선하면서 기존 것을 바꾸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대한 수요는 과도할 정도로 높아져 감당 가능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겉핥기식 정책이 난무한다.

권위주의 시절 이뤄진 자의적 판단과 밀어붙이기식 정책집행에 따른 반발과 반성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제도적 뒷받침과 절차의 준수가 중요하게 간주됐다.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서 제도의 시작이 무엇을 위해서였는지는 망각하고 절차와 규제만 복잡해졌다. 법률규정에 따라 수많은 계획이 끊임없이 작성되지만 누구도 그 계획을 준수할 생각도,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제도의 정교화를 통한 효용은 이미 사라졌고 부작용과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누구도 이것에 대해 전면적인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너무나 익숙해졌기에 그밖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돌이켜보면 했어야 할 일을 못했기에 큰 사회적 비용을 치렀고 그 후유증은 오래갔다. 현재 진행되는 변화 역시 우리의 변신을 요구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부분 영역은 점점 더 현상유지 성향으로 흘러간다.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의문을 제기하며 뒤집어보는 도전적 사고가 요구된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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