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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광화문]백년기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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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상속하면 회사가 사라진다."(2020년) "상속세 때문에 셀트리온은 국영기업이 될 것이다."(2023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한 발언이다. 이는 셀트리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법을 고치지 않는 한 다른 기업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영향은 국가 전체에 미친다.

먼저 앞의 언급을 따져보자. 현행 상속세율은 50%(최대주주 할증 적용 60%)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한다고 가정할 때 단순계산하면 보유지분 100%를 물려받아도 40%만 남는다. 한 번 더 이 과정을 반복하면 지분율은 16%가 된다.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다. 뒤의 말도 현실화하고 있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은 상속세 대신 6조원 규모의 세금을 내기 위해 넥슨 지주사 NXC 지분 29.3%를 물납했다. 기획재정부가 NXC의 2대주주가 됐다. 이런 식이면 정부가 1대주주가 되는 기업이 없으란 법이 없다.

이것만이 아니다. 스웨덴 제약회사 아스트라의 사례는 언제든 한국에서 재연될 수 있다. 창업주 일가가 아스트라 주식을 팔아 상속세를 내는 과정에서 주가가 급락했고 상속세가 시가총액보다 많았다. 창업주 가문은 파산했고 영국 제네카가 아스트라를 싼값에 거머쥐었다.

한미약품의 경영권 분쟁은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가 발단이었다. 창업주의 부인과 딸이 상속세를 낼 돈을 구하려고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한 반면 두 아들은 반대했고 경영권 다툼으로 이어졌다. 지분을 일부 처분하거나 하지 않으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업승계를 해야 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오너가 매각을 택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락앤락, 농우바이오, 유니더스, 쓰리세븐, 한샘, 우리로광통신 등 상속세를 못 내 팔려나간 기업 리스트는 점점 길어진다. 이는 그 기업에 고용된 이들의 일자리를 위태롭게 한다.

경영권을 지키려면 갖은 방법으로 자금을 구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내야 한다. 고 이건희 회장의 유산에 부과된 12조원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삼성 오너일가가 주식담보대출을 받거나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등 계열사 지분을 팔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별세로 조현준 회장을 비롯한 효성그룹 일가도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 조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계열분리와 세금조달 차원에서 계열사 지분을 처분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이미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이런 마당에 '백년기업'을 논하는 것은 헛되고 헛된 일이다. 5000여개 백년기업을 보유한 독일의 상속세는 최고세율이 30%고 기업규모에 관계없이 가업상속공제를 해준다. 고용 등 일정요건을 충족하면 최대 100%를 감면한다.

머니투데이

정부도 징벌적 상속세의 폐단을 고려해 세제 합리화를 추진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일, 프랑스, 일본 등 20개국이 채택한 것처럼 상속인 각자가 받은 만큼 유산취득세를 내게 하는 방안이 이 중 하나다.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과 같이 상속받은 재산을 팔 때 자본이득세를 물리는 방법도 거론됐다.

그러나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상속세와 관련한 논의나 정부의 정책은 탄력을 잃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해 실현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이대로 두면 백년기업의 동의어는 국영기업이 될 것이다. 전 기업의 국영기업화가 목적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납부 가능한 수준의 부담을 지워 가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최고의 복지가 일자리라면 이는 곧 미래세대의 일자리와 복지, 미래정부의 세원을 담보하는 일이다. 그러니 야권도 진영논리를 벗어나 진정한 협치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

강기택 산업1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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