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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억할 오늘] 뉴욕 중산층이 가난과 그리 멀리 있지 않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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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제이컵 A .리스
한국일보

제이컵 A. 리스가 1890년 무렵 촬영한 '하룻밤 5센트 숙소' 모습.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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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출신 미국 언론인 제이컵 A. 리스(Jacob A. Riis, 1849.5.3~1914.5.26)는 사진이 지닌 사회변혁의 힘과 가능성을 누구보다 앞서 감지한, 탐사보도·포토저널리즘의 개척자다. 그는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 남부 빈민가의 비참한 실상을 사진과 기사로 잇달아 소개해 1884년 뉴욕시 빈민주거개선위원회가 만들어지게 하고 1890년 출간한 논픽션 ‘나머지 절반의 삶(How the Other Half Lives)’이란 책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정부로 하여금 일련의 빈민복지정책에 시동을 걸게 했다.

교사 겸 지역신문 기자였던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의 15남매 중 셋째로 덴마크 리베(Ribe)에서 태어난 리스는 10대 시절 목공 기술을 익혀 노동자로 일하다 21세 되던 187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동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목수와 광부, 벽돌공 등으로 일하다 1873년 뉴욕데일리의 계약직 기자로 채용돼 이민자들의 관문이던 맨해튼 로이스트 지역 경찰기자가 됐다.

19세기 초 6만 명에 불과하던 뉴욕시 인구는 세기말 약 343만 명으로 60배 가까이 폭증했다. 남북전쟁 이후 이주한 남부 흑인들과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노동자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 이민자를 비롯한 유럽 이민자들의 삶은 열악했다. 결핵으로만 6남매를 잃은 리스는 그들의 현실을 사진과 기사로, 또 책으로 세상에 알렸다. 당시의 시민 공동체는 지금과 또 달라 뉴욕 중상류층은 그의 글에 뜨겁게 감응했고 정치인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가난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았던 그들은 가난이 개인 탓만은 아니란 걸 알았고 모른 척하지도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뉴욕시박물관은 그의 글과 네거티브 사진으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 그 무렵 거의 잊히다시피 했던 그의 헌신과 성취를 다시 환기함으로써 생활고에 시달리던 전후 시민들의 마음을 달랬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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