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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AI시대 대학, 뇌수술 수준으로 학생들 생각 바꿔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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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미네르바대학 설립자

최도성 한동대 총장과 대담

“시험이 끝나고 6개월 뒤면 대학생 중 95%는 뭘 배웠는지 기억조차 못 합니다. 지금처럼 지식 암기를 위한 대학 교육은 ‘챗GPT’ 시대에 필요 없죠.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 적용하는 사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대학의 역할입니다.”(미네르바 대학 설립자 벤 넬슨)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꼽히는 미네르바 대학과 교육기업 미네르바 프로젝트의 설립자인 벤 넬슨(49) 대표가 지난 1일 서울에서 최도성(72) 한동대 총장을 만났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는 1995년 개교 이후 모든 신입생을 전공 구분 없는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등 교육 혁신을 해온 학교다. 한동대는 올해부터 미네르바 프로젝트와 업무 협약을 맺고 학생들의 사고 역량을 높이기 위한 새 교육과정을 개발하기로 했다. 국내 4년제 일반대 중 처음이다.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대는 캠퍼스, 강의실 없이 학생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현장 실습’을 하는 혁신적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한동대도 오는 6월부터 학생들이 외국에 머물며 기업이나 공공기관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미네르바식’ 교육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AI 시대, 전통적인 대학 교육 시스템으론 미래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두 학교 모두 무전공으로 신입생 뽑아

-그간의 교육 혁신은 어떤 것이 있었나.

벤 넬슨(이하 넬슨)=최대 혁신은 학생들에게 ‘배운 내용을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제 프로젝트를 함으로써 강의실의 지식과 통합시키는 것이다. 또한 1학년 때는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을 기르고, 2학년 때부터 전공 공부를 시작하는 커리큘럼을 짰다. 1학년 과정은 (지식 과목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효과적 의사 소통’ ‘효과적 상호작용’ 등 4가지로 구성된다. 이런 과목으로 체계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한다. 비유하자면 기존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뇌 수술(brain surgery)을 하는 것이다.

-그런 교육이 왜 필요한가.

넬슨=인공지능(AI)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학생들을 ‘암기하는 기계’로 훈련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출하고 있다. 지금의 대학 교육은 단지 테스트를 통과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기업에선 졸업생들이 대학에서 배운 것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고 화를 낸다.

최도성(이하 최)=교수가 말한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적을 수 있으면 최고점을 받는다. 이런 학생은 현장에서 문제 해결을 못 한다. 예전과 달리 인공지능 시대에선 ‘지식의 반감기(半減期·원래 값의 절반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가 훨씬 짧아졌다. 지식의 발전이 폭발적이기 때문에 이젠 1학년 때 배운 지식이 4학년 땐 쓸모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대학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넬슨=이론을 배웠더라도 이를 적용하는 능력을 배우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이걸 연결시키는 게 대학의 몫이다. 지식이 지속 가능할 수 있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게 대학의 숙제다.

최=단순 지식보다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문제를 풀 것인가’ 하는 사고 능력을 기르려고 한다. 이건 평생 없어지지 않을 역량이다. 올해부터 ‘글로벌 로테이션’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세계 30개 대학과 비정부기구(NGO) 한 곳당 학생 5~20명씩을 보내 1~2학기 동안 창업을 하거나 현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할 예정이다. 에티오피아, 필리핀 등 주로 개발도상국들이다. 기업에서 성과는 학벌과 비례하는 게 아니라 역량과 창의적 사고력에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들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학벌이 안 좋아도 남과 협력을 잘하는 사원들이 성과가 더 좋다고 한다.

-미네르바대가 개교한 지 10년이 됐다. 그간 교육 결과는.

넬슨=졸업생들의 성과는 아이비리그(미국 동부 지역 명문대) 대학과 비슷한 수준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도 큰 성과다. 미네르바 학생 대다수가 연 가구 소득 5만달러(약 6700만원) 이하 출신이다.

실제로 미네르바 졸업생의 취업률(창업·대학원 진학 포함)은 86% 정도다. 매년 입학 경쟁률은 100대1에 달한다. 미네르바대의 연간 등록금은 2만1000달러로 아이비리그의 3분의 1 정도다.

최=한동대는 개교 당시부터 무전공으로 학생들을 받았다. 2학년 때 전공을 ‘복수’로 선택하게 했다. 졸업생 모두 복수 전공을 하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어딜 가든 적응력이 뛰어나다. 세계 100개 이상 국가에 졸업생이 진출한 것도 이런 혁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세미나식 강의

-미네르바대는 교수 정년 보장 제도인 ‘테뉴어(Tenure)’가 없다.

넬슨=테뉴어는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지금은 대학 시스템 변화를 막는 기괴한 시스템이 됐다. 평생 고용은 교수들의 동기를 떨어뜨린다.

-미네르바대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넬슨=어차피 오프라인 강의도 안 듣는 학생들은 외면한다. 문제는 수업 형식이다. 미네르바는 모든 수업을 세미나로 진행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자와 교수자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오히려 학생들의 발언 시간을 공평히 배분하는 등 더 나은 교육도 가능하다.

최=앞으로 글로벌 로테이션을 나가는 학생은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게 된다.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온라인 강의다. 60분짜리 강의라면 모든 학생들한테 일정 시간을 배정해 참여를 의무화하는 기술도 사용 가능하다. 온라인 강의가 오프라인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떤 학생을 뽑으려고 하나.

넬슨=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지적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와 대면 면접으로 학생을 뽑고, 학생의 환경을 파악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부유한 가정 출신 지원자가 유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브라질 공립학교의 상위권 학생이 미국 사립학교의 상위권보다 못하다고 볼 수 없다.

미네르바대는 학생 선발에 SAT(미국 대입 자격 시험)나 에세이 등을 활용하지 않는다. 대신 읽기, 쓰기, 수학적 능력을 측정하는 인지 능력 테스트와 자기소개서, 면접으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

최=평범한 학생을 우수한 학생으로 만드는 게 진짜 교육이다. 내신이나 수능에서 최소한의 수학 능력만 점검한다면 그다음은 학생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적성을 알 수 있도록 입학 방법을 다양화할 생각이다.

☞'혁신대학 1위’ 미네르바대학

조선일보

벤처 창업가 벤 넬슨이 설립한 대학으로, 2014년 개교했다. 물리적 캠퍼스가 없고, 이론 강의는 모두 온라인으로 듣는다. 학생들은 샌프란시스코·베를린·런던·부에노스아이레스·타이베이·서울·하이데라바드 등 전 세계 7국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현지 공공기관·기업과 함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지난해 국제경쟁력연구원이 발표한 ‘세계 혁신 대학 랭킹’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수업은 강의당 20명 내외로 인원을 제한하고, 모두 세미나 방식으로 진행한다. 1학년 땐 전공 없이 기초 과목을 가르치고,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한다.

[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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