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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1호 난민 카렌족’ 어린이, 한복 입고 K팝 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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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서 온 카렌족, 첫 단체 여행

조선일보

국내 재정착 1호 난민인 ‘카렌족’ 가족들이 어린이날을 맞아 경북 김천의 ‘국립김천치유의숲’을 찾았다. 지난 4일부터 1박 2일간 산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신이 난 모습이다. 카렌족 250여 명은 2013년 난민법이 시행되면서, 유엔난민기구의 추천으로 2015년부터 차례로 입국해 국내에 정착 중이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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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경북 김천의 국립김천치유의숲. 미얀마 카렌족 출신 아이 20여 명이 K팝 가수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인구(18)군은 자작나무와 잣나무가 어우러진 숲에서 ‘힐링’이 되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가족들과 함께 산채비빔밥을 먹던 나군은 “비빔밥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뼈해장국”이라고 했다. 나군은 아버지 나이우(38)씨와 함께 지난 2015년 난민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본래 이름은 나이쿠였다.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성을 나씨로 정했다.

카렌족은 2013년 시행된 난민법에 따라 해외 난민 캠프에서 국내로 재정착하게 된 대한민국 1호 난민이다. 미얀마에서 소수민족으로 탄압받자 태국·말레이시아에 난민 캠프를 꾸렸는데, 이 중 일부인 250여 명이 2015년부터 유엔난민기구(UNHCR) 추천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자녀를 올바른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주로 인천과 경기도에 자리 잡았다.

이날 김천에서는 어린이날을 맞아 카렌족 난민들의 1박 2일 숲 나들이가 열렸다. 카렌족 난민이 단체로 여행을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에는 생후 22개월 자녀부터 60대 부모까지 43명, 아홉 가족의 카렌족이 참석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김채윤(12)양은 “이렇게 숲에서 놀 수 있어서 정말 즐겁다”고 했다. 해먹에 누운 김양은 친구들에게 “내 모습이 번데기 같다”며 “곧 나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세윤(10)군은 “해먹에 눕는 건 무서워서 그네처럼 앉아서 탄다”며 “일요일까지 여기서 놀고 월요일도 휴일이라 쉬고 화요일도 학교 운동회”라며 “앞으로 놀 일만 남은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했다.

유년기를 한국에서 보낸 아이들은 “이제는 한국이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여섯 살 때 한국에 온 나세준(14)군은 “축구와 럭비를 가장 좋아하는데, 최근엔 둘 중 럭비에 열정을 더 쏟고 있다”며 “럭비를 열심히 해서 대학도 가고 언젠가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인구군은 “인천기계공고 2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 전공인 전기와 관련한 직장을 갖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날 아이들과 함께 숲 나들이에 동행한 소예소(48)씨는 자녀들과 함께 자작나무로 만든 활쏘기 체험을 하고 있었다. 2018년 입국한 그는 인사말과 간단한 대화 외엔 한국말이 서툴렀다. 아들인 소민우(23)씨가 통역해줘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들 소씨는 “아버지는 철강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고,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 김포시의 식품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아버지가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때 새벽 4시부터 출근해 매일 뜨거운 철 제조 현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면서 힘들어하셨다”고 했다. 2015년 국내에 들어온 초크리(34)씨는 “아이들과 기본적인 말은 한국어로 대화하지만, 아이들보다 한국어를 잘 못해 가끔 소통이 힘들다”며 “언어 습득이 더 어렵다”고 했다. 이 카렌족 난민 부모 세대는 여전히 한국 적응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네잎클로버를 찾거나 나무 이름을 맞히며 놀았다.

이번 숲 나들이는 경기글로벌센터와 산림청, 김천시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송인선 경기글로벌센터장은 “어린 자녀들은 그나마 낫지만, 부모 세대 카렌족이 한국에 와서 뒤늦게 한국어를 공부해 생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2015년에 1기로 들어온 난민 부모 세대는 대부분 바로 다음 해 공장 등에 취업해 이제 7~8년 차 직장인이 됐지만, 대부분은 언어적 어려움 때문에 아직도 월급 인상 없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카렌족 난민 가족들은 5일 김천 사명대사공원을 찾아 전통 복식 체험으로 한복을 입어 보고, 직지사를 방문했다. 첫 여행을 마친 난민들은 “조금 더 한국 사회에 깊이 들어간 느낌”이라고 했다. 국립김천치유의숲 박한진 센터장은 “어린이날을 맞아 한국에 있는 난민들에게 한국의 숲과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해 정착 생활을 격려하고 싶었다”고 했다.

☞카렌족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으로, 대부분 미얀마 남부 지역에 살고 있다. 미얀마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반정부 투쟁을 벌여왔고, 1980년대부터는 정부 탄압을 피한 일부가 태국·말레이시아 등 난민 캠프에 살고 있다.

[강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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